청산별곡(靑山別曲)은 고려 시대에 불렸다고 전해지는 노래로, 창작자 및 창작 연도 등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가사의 내용을 토대로 무신정변 이후나 대몽항쟁 시기 이후 창작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죠. 지금 전해지는 작품은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문자로 기록된 것입니다.
조선 전기의 성종대에 편찬된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에 악보가 기록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전까지는 궁중 향악으로 연주되었고 민간에서도 불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곡의 선율을 차용하여 조선 전기 납씨가, 대국, 경근지곡 등의 향악이 창제되었다고 합니다. 옛 문헌에서 제목이나 해설을 찾을 수 없어 고려 시대에 창작된 노래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서경별곡’, ‘쌍화점’과 형식이 매우 비슷하고 언어구사나 정조가 조선 초기의 노래와는 전혀 다르므로 대개 고려가요로 봅니다. <출처 : 나무위키>
저는 개인적으로 청산별곡을 우리 민족의 슬픔을 담은 기록적 가치가 매우 높은 노래로 보고 있습니다. 삶에 대한 고통과 환란이 많았던 우리 백성들은 꿈을 통해서만 보상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꿈에 보이는 청산이야 말로 우리 백성들이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는 숨구멍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그런 아픔들을 분노로 표출하지 않고 예술성을 가미한 청산별곡은 우리민족의 예술미를 더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가사를 udio에 부탁해서 옛날 말 그대로 작곡을 시켜보았는데, AI가 읽지 못하는 것은 생략하거나, 다르게 읽고 있어서…어째든 유용한 데이터라 생각하고 일단 올려봅니다.

<청산별곡>
원본
해석
살어리 살어리랏다 쳥산(靑山)애 살어리랏다
멀위랑 ᄃᆞ래랑 먹고 쳥산(靑山)애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널라와 시름 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로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가던 새 가던 새 본다 믈 아래 가던 새 본다
잉무든 장글란 가지고 믈 아래 가던 새 본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이링공 뎌링공 ᄒᆞ야 나즈란 디내와손뎌
오리도 가리도 업슨 바므란 ᄯᅩ 엇디 호리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어듸라 더디던 돌코 누리라 마치던 돌코
믜리도 괴리도 업시 마자셔 우니노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살어리 살어리랏다 바ᄅᆞ래 살어리랏다
ᄂᆞᄆᆞ자기 구조개랑 먹고 바ᄅᆞ래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가다가 가다가 드로라 에졍지 가다가 드로라
사ᄉᆞ미 지ᇝ대예 올아셔 ᄒᆡ금(奚琴)을 혀거를 드로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가다니 ᄇᆡ브른 도긔 설진 강수를 비조라
조롱곳 누로기 ᄆᆡ와 잡ᄉᆞ와니 내 엇디 ᄒᆞ리잇고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살겠노라 살겠노라. 청산에 살겠노라.
머루랑 다래를 먹고 청산에 살겠노라.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우는구나 우는구나 새야. 자고 일어나 우는구나 새야.
너보다 시름 많은 나도 자고 일어나 우노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가던 새 가던 새 보았느냐. 물 아래 가던 새 보았느냐.
이끼 묻은 쟁기를 가지고 물 아래 가던 새 보았느냐.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이럭저럭 하여 낮일랑 지내 왔건만
올 이도 갈 이도 없는 밤일랑 또 어찌 할 것인가.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어디다 던지는 돌인가 누구를 맞히려는 돌인가.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이 맞아서 우노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살겠노라 살겠노라. 바다에 살겠노라.
나문재, 굴, 조개를 먹고 바다에 살겠노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가다가 가다가 듣노라. 외딴 부엌 가다가 듣노라.
사슴이 장대에 올라서 해금을 켜는 것을 듣노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가다 보니 불룩한 술독에 독한 술을 빚는구나.
조롱박꽃 모양의 누룩이 매워 (나를) 붙잡으니 내 어찌 하리이까.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이하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