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라는 것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농경 시대에는 곡식이, 산업화 시대에는 금속이, 그리고 현대에는 종이와 플라스틱 카드가 그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21세기 디지털 혁명은 이 모든 것을 다시 질문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형태의 돈을 써야 할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와 스테이블코인입니다.
이 글에서는 정부가 만드는 디지털 돈, CBDC가 왜 필요한지, 그리고 탈중앙화를 꿈꾸는 스테이블코인과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서로 다른 DNA를 가진 이 두 가지가 과연 경쟁하는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 우리의 금융 생태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함께 탐험해보겠습니다

1. CBDC란 무엇인가 – 국가가 보증하는 새로운 형태의 돈
“CBDC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단순히 ‘디지털 돈’이라는 짧은 설명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CBDC, 즉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는 단순히 기존의 화폐를 전자적으로 구현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직접 지급을 보증하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디지털 자산으로서, 기존의 화폐 시스템을 디지털화하여 더 높은 신뢰성과 안정성을 제공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물론, CBDC는 블록체인과 같은 최첨단 기술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여기서 진정한 핵심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누가 발행했는가’라는 점에 있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정부가 발행한다는 사실이야말로 CBDC를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며, 이는 곧 ‘돈’이라는 개념의 본질적 신뢰를 국가가 직접 제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왜 CBDC가 필요한가 – 변화하는 결제 환경과 금융 포용의 요구
그렇다면, 왜 우리는 지금 CBDC가 필요한 것일까? 시대가 바뀌면서 현금 사용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비대면 결제가 일상화되면서, 실제 지폐나 동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점점 감소하고 있으며, 이는 디지털 기반 결제 수단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금융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는 인구가 여전히 상당수 존재하는데,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접근 가능한 디지털 화폐는 이러한 금융 소외 계층을 포용하는 데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지급결제 효율성 측면에서도 CBDC는 상당한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카드 결제 수수료나 해외 송금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으며, 이러한 비용 절감은 국가 경제의 전체적인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3. 스테이블코인과의 차이 – 발행 주체와 운영 방식의 본질적 차이
CBDC와 비슷한 개념으로 자주 비교되는 것이 바로 ‘스테이블코인’이다. 이 둘은 얼핏 보기에는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여러 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CBDC는 중앙은행, 즉 정부가 발행하는 중앙화된 디지털 화폐인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민간 기업이나 재단이 발행하는 탈중앙화 혹은 부분 탈중앙화된 디지털 자산이다. 또한, CBDC는 국가가 가치 보장을 약속하는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나 금과 같은 실물 자산에 연동하거나 알고리즘에 기반하여 가치를 유지하려 한다. 법적 지위에서도 두 자산은 차이를 보이는데, CBDC는 법정 통화로서 누구나 받아야 하는 강제성을 지니지만, 스테이블코인은 법적 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거래소나 플랫폼에 따라 사용 여부가 결정된다. 이처럼 발행 주체, 운영 방식, 가치 보장 방식, 법적 지위까지 여러 면에서 CBDC와 스테이블코인은 근본적인 차이를 가진다.
4. 스테이블코인이 필요한 이유 – 글로벌 경제와 디지털 자산 생태계
그렇다면, 왜 우리는 스테이블코인 또한 필요로 하는 것일까? 우선, 스테이블코인은 국경을 초월한 디지털 결제 수단으로 매우 유용하다. 전 세계 어디서나 신속하고 저렴하게 결제할 수 있다는 점은 글로벌 커머스 시대에 필수적인 특성이다. 또한, 비트코인과 같은 변동성이 큰 암호화폐와 달리, 스테이블코인은 상대적으로 가치가 안정되어 있어 거래 수단으로서 안정성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스테이블코인은 정부나 중앙기관의 통제를 받지 않고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하여, 탈중앙화라는 가치를 실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5. 둘은 경쟁하는가 – 보완적 관계로 보는 디지털 화폐의 미래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CBDC와 스테이블코인은 경쟁 관계에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은 ‘아니다’이다. CBDC와 스테이블코인은 서로 다른 목적과 철학을 기반으로 존재하며, 오히려 보완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CBDC는 국가 통화 시스템을 위한 것이고, 스테이블코인은 개인 간 거래나 글로벌 상거래, 탈중앙 금융(DeFi) 등의 영역에서 활용된다. 따라서 CBDC가 디지털 결제의 기초 인프라를 제공하면, 스테이블코인은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서비스와 사용 사례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는 마치 도로와 자동차의 관계처럼, CBDC가 디지털 경제의 기반 인프라를 제공하면, 스테이블코인은 그 위에서 다양한 형태의 금융 서비스와 혁신을 실현해 나가는 것이다.
6. 앞으로의 전망 – 확산과 규제, 그리고 새로운 진화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CBDC가 세계 각국에서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확산된다면, 스테이블코인 시장에는 큰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우선, 디지털 결제의 표준이 CBDC로 자리 잡게 되면, 이에 따라 법적 규제와 기술적 기준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담보가 불확실하거나 기술적 기반이 취약한 스테이블코인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확실한 자산 담보와 강력한 기술적 기반을 가진 스테이블코인은 여전히 글로벌 결제 시장에서 빠르고 저렴한 수단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CBDC와 스테이블코인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모델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특정 플랫폼이나 글로벌 기업이 CBDC를 기반으로 한 스테이블코인 형태의 자체 화폐를 운영하는 모습이 나타날 수 있으며, 이는 디지털 금융 생태계의 새로운 진화 방향이 될 수 있다.
7. 디지털 화폐로 인한 부작용 – 통화 정책과 금융 시스템의 재편 리스크
CBDC와 스테이블코인이 가져올 긍정적 변화에 대한 기대와는 별개로,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역시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우선, CBDC의 확산은 기존 은행 시스템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다. 만약 사람들이 대규모로 은행 예금을 인출해 CBDC로 옮기게 되면, 은행의 대출 여력이 급감하고, 금융 시스템 전반에 걸쳐 불안정성이 증대될 수 있다. 또한, 중앙은행이 직접 개인과 거래하는 구조가 될 경우, 기존 상업은행의 역할이 축소되거나 재편되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아울러, 정부가 디지털 화폐를 통해 개인의 소비 패턴을 실시간으로 추적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우려는 디지털 화폐 도입 논의에서 매우 민감한 주제로 다루어진다.
8. 개인정보 우려 – 모든 거래가 기록되는 사회에 대한 불안
디지털 화폐 시대가 도래하면서 가장 크게 부각되는 문제 중 하나는 바로 ‘개인정보 보호’이다. CBDC는 기본적으로 모든 거래가 전자적으로 기록되기 때문에, 개인의 구매 습관, 이동 경로, 금융 활동 등이 정부나 중앙기관에 의해 감시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데이터가 공익적 목적으로만 사용될 것이라 주장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만약 데이터가 악용되거나 유출된다면,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특히, 정부가 부적절하게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할 위험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디지털 화폐 시스템을 설계할 때는 ‘개인정보 보호’와 ‘익명성 보장’이라는 두 축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하며, 투명하고 엄격한 데이터 관리 규범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