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발레리의 시 ‘석류’

폴 발레리 Paul Valery (1871-1945)는 필자가 좋아하는 프랑스 시인입니다. 신앙적 절대주의자인 폴 클로델과는 대조적인 위치에서 20세기 프랑스 전반의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입니다.

 

그는 남프랑스 지중해안 세트에서 출생했는데 아버지는 코르시카, 어머니는 이탈리아의 제노아 출신입니다. 따라서 그는 다른 유럽인과는 다른 지중해 정신을 타고났고 그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지중해 정신이란 모호하고 신비하고 격정적인 정신을 멀리하고 명쾌하고 지성적이며 정적인 정신을 말합니다.

 

그는 몽펠리에 법과 대학에서 수학했는데 이 동안에 우연히 피에르 루이스를 만나 사귀게 되고 그의 주선으로 앙드레 지드, 말라르메 등을 알게 되어 중대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때 이미 시를 쓰고 있었고 이 시들은 당시 전위적인 문예지에 발표되어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1892년, 자신의 시 예술 활동이 명료하고 논리적인 지적 활동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 문학과 시를 일체 포기하고 지적 저작 활동에 전념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1913년, 앙드레 지드와 갈리마르 출판사의 권고로 젊은 시절의 시들을 모아 시집으로 출판하게 되면서 시 창작을 재개했습니다. 그가 쓴 <젊은 여인 파르크>는 512행의 장시로, 성공적으로 발표되었고 이후 1922년, <매혹>이라는 시집을 출판하며 시인으로서의 창작 활동을 마쳤습니다.

 

시인으로서의 발레리는 보들레르, 말라르메를 잇는 심미적 상징주의 계보에 속하나, 시의 창작도 지적 작업의 소산이며 엄밀한 방법에 의해 제작된다는 그의 주장대로 주지적이며 기교적인 면이 두드러집니다. 그에 따르면 시는 산문과 달라서 시인의 사상이나 감정, 감흥을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시는 언어가 가진 모든 능력을 구사하여 독자의 마음 속에 어썯 미의 감각, 조화의 세계를 낳게 만드는 일이죠. 따라서 시인은 말의 모든 힘(음, 리듬, 음률, 낱말과 낱말의 접근과 대조, 이미지, 상징, 비유 등등)을 구사하여 이러한 미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기하학자, 건축가, 지성인에 속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시론은 말라르메의 시혼과 더불어 세계 제2차 대전 후의 프랑스 시단에 중요하고 깊은 영향을 주었고 주지적 심미파에 속하는 많은 시인들은 그들의 시적 창작 활동의 일부 또는 전부를 그 에게서 배우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의 시 ‘Les Grenades’를 노래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영 마음에 차지는 않지만 한번 들어보세요

Les grenades

 

Dures grenades entr’ouvertes
Cédant à l’excès de vos grains,
Je crois voir des fronts souverains
Eclatés de leurs découvertes !

Si les soleils par vous subis,
Ô grenades entre-baillées,
Vous ont fait d’orgueil travaillées
Craquer les cloisons de rubis,

Et que si l’or sec de l’écorce
A la demande d’une force
Crève en gemmes rouges de jus,
Cette lumineuse rupture
Fait rêver une âme que j’eus
De sa secrète architecture.

 
석류

너는  씨알의 힘에 못이겨
마침내 반쯤 벌어진 굳은 석류들이여,
스스로의 발견에 파열된
고매한 이마들을 보는 듯!

오, 반만 입을 연 석류들이여.
그대들이 받아온 일광들은
자만심에 움직인 그대들로 하여금
홍옥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그리고 금빛 메마른 껍질마저
어떤 힘의 욕구에 밀려
과즙의 붉은 구슬 되어 터진다 하며,

이 눈부신 파열은
일찍이 내가 가졌던 어느 영혼의
은밀한 구조를 몽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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